추리 SF판타지

시인장의 살인, 좀비 소설 또는 본격 미스터리 추리 소설?

책 읽는 밤 2020. 3. 1.

일본의 추리 소설 작가 이마무라 마사히로의 데뷔작 <시인장의 살인>은 좀비 소설인지, 살인을 주요 소재로 다룬 추리 소설인지 살짝 헷갈리는 미스터리 물이다.

주인공 하무라 유즈루는 회원이 단 두 명뿐인 신코 대학교 미스터리 애호회 회원이다. 회장은 아케치 교스케로 신코 대학 홈즈로 불리며 하무라를 왓슨이라 부른다.

어느 날 탐정 소녀로 이름이 난 켄자키 히루코가 나타나 아케치가 그렇게도 참여하길 원했던 영화 연구부의 여름 합숙에 자신이 아케치와 하무라를 데려가겠다고 한다.

아케치가 그렇게도 애걸복걸해도 여름 합숙 참가가 허락되지 않았는데, 탐정 소녀 켄자키가 한방에 깨끗하게 해결한 것으로 보아 아케치보다 그녀의 실력이 한 수 위임을 알 수 있다.

켄자키 덕분에 영연부의 여름 합숙에 참가하면서도 아케치는 마냥 즐겁기만 하다. 하무라는 어쨌든 영연부의 여름 합숙이 열리는 사카안 호수가 내려다 보이는 패션 자담장으로 이들과 함께 향하는데...

시인장이라길래 처음엔 시인과 관련된 살인 사건이라고 막연히 생각했으나, 알고 보니 시인이 그 시인이 아니라 주검을 뜻하는 시(屍) 자를 쓴 시인이었다. 물론 시인(屍人)은 국어사전에는 없는 말이다. 일본어에는 이런 단어를 상용하는 지  모르겠지만, 어법이 기괴하다. 

아무튼, 시인장의 살인은 시체들이 있는 산장의 살인 쯤이이라고 할 수 있겠다. 제목을 그렇게 붙인 이유는 소설의 초반부에 나온다. 자담장 인근에서 5만 명이 모이는 록 페스티벌이 열리고 있었는데, 비밀조직 '마다라메 기관'의 실험으로 관람객들이 좀비로 변하여 자담장을 습격하는 사건이 벌어진다.

그러니 여기서 말하는 시인은 좀비를 뜻한다. 일본어에서 자담장과 시인장이 같은 발음이니 작가는 중의적 의미로 썼겠지만, 좀 유치한 작명이다.

추리 소설을 읽는 재미는 독자와 작가의 두뇌싸움에 있다. <시인장의 살인>은 현대 추리 소설에서는 시들해진 클로즈드 써클 형식을 따르면서도 좀비물을 결합하여 나름 신선미를 더했다. 마지막까지 범인이 누구인지도 잘 숨겼다. 물론 추리 소설을 많이 읽은 독자라면 매우 높은 확률로 범인을 유추할 수도 있으리라.

또 아케치가 소설 초반부에 예의 없이 죽여버리는 것은 좀 어이가 없고, 남성들에게 농락당한 여대생들이 자살을 선택했다는 것도 지나치게 봉건적 발상이다. 여주를 꽤나 마초적 관점에서 묘사하는 것도 거슬리는 부분이다. 예건대 이런식이다.

"갑자기 내 등에 히루코 씨의 가슴이 밀착됐다. 히루코 씨! 아담한 몸에 히말라야 산봉우리를 숨기고 있었군요!"

이러한 몇가지 결점들에도 불구하고 마지막까지 읽어볼 만한 추리소설로는 족하다. 일본에서 출간 당시 '본격 미스터리 대상' 등 세가지 주요한 상을 석권했으니 추리 소설로서는 어느 정도 대중성을 인정받은 작품이라고 할만하다고 하겠다.

작가는 수상 소감에서 "옛날부터 독서 취향이 잡다하여 서점 책장을 바라보다 제목이나 장정이 마음에 딱 와닿는 책을 사는 타입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송구스럽지만 사실 본격 미스터리에 심취한 적은 없다..."고 말했다.

그런 작가가 이런 추리 소설을 썼다. 작가의 이 말은 아마도 사실일 것이다. 미스터리 소설을 쓰고 싶은 사람은 미스터리 소설을 너무 많이 읽으면 안 될 것이다. 자신도 모르게 클리셰에 빠지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이 말은 아마도 다른 분야에도 적용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