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리 SF판타지

독고솜에게 반하면, 마녀와 여왕 그리고 탐정 소녀 이야기

책 읽는 밤 2020. 3. 3.

작가 허진희의 첫 단행본 <독고솜에게 반하면>은 열네 살 여중생들의 이야기다. 마녀가 등장하고 여왕이 등장하고 탐정이 등장한다. 거기다 책 표지는 만화다. 분위기로 봐서는 영락없는 라노벨이다. 그러나 이 소설은 제10회 문학동네청소년문학상 대상 수상작이다.

<독고솜에게 반하면>은 화자가 둘이다. 탐정 소녀 서율무와 여왕 단태희의 시점에서 마녀 독고솜이 서술된다. 마녀 독고솜은 독특한 이름만큼이나 독특한 능력을 가진 캐릭터다. 이 시대에 검은 원피스를 즐겨 입는 마녀가 등장하다니!

어느 날 탐정 서율무가 다니는 학교에 마녀 독고솜이 전학 온다. 그 학교의 여왕 단태희는 똘마니 박선희를 시켜서 독고솜을 손 봐준 뒤에는 이내 관심을 꺼버린다. 탐정 놀이에 빠진 서율무와 친한 걸 보니 별 볼 일 없다고 생각해서다.

여왕 단태희의 눈에는 열네 살이나 되었는데, 중학생씩이나 되어서 철딱서니 없게 탐정놀이에 빠져있는 서율무가 유치해 보였고 대책 없는 아이로 보일 뿐이다. 그런 애와 친한 독고솜도 마찬가지로 보였다.

탐정 서율무는 아이들에게 따돌림을 받는 독고솜에게 처음부터 이끌렸다. 왜냐구? 탐정은 모든 것을 알아야 하고, 누군가를 치밀하게 관찰해야 되니까!

작가 허진희는 마녀 독고솜이 자신의 집에 서율무가 처음 놀러 온 날, 그녀에게 마법을 거는 상황을 아주 근사한 문장으로 표현했다.

"숨을 한번 크게 들이쉬고 내뱉어 볼래? 기분이 좋아질거야!"

솜이가 두 손을 과장되게 움직이며 콧구멍을 벌름거렸다. 어쩐지 따라 하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은 분위기였다. 이번에도 별수 없이 솜이를 따라 심호흡을 하기 시작했다. 놀랍게도, 얼마 가지 않아 묘하게 상쾌한 느낌이 코끝, 손끝, 발끝을 감싸더니 곧 온몸을 타고 돌았다."

그렇다. 독고솜은 마녀라고는 하지만 아직 어린, 착하디 착한 마녀다. 독고솜의 엄마 또한 당연히 마녀인데, 그녀는 저주 또한 아주 착한 저주를 건다. 아마도 솜이도 그런 피를 물려받았을 거다.

이 소설은 로맨스물을 연상시키는 제목과는 달리 학교 폭력이 나오고 가정 폭력이 나온다. 그 정점에 마녀와 여왕, 탐정 소녀가 있다. 그 어려운 문제들을 십 대의 아이들이 놀랍게도 누구의 도움도 없이 스스로 풀어간다.

문제는 아주 심각한데, 해결은 너무 쉽게 풀려 버린다. 대부분의 청소년 소설에 등장하는 주인공들처럼 이 소설의 아이들도 어른들보다 더 성숙하고 더 반듯하다. 그러니 어른들은 마땅히 이 아이들에게 배워야 한다.

아이들이 트라우마와 갈등을 너무나도 쉽게 치유해 나가는 과정은 좀 오글거린다. 아이들의 순하고 착한 마음에 공감하기에는 내가 나이가 너무 많이 들어버린 탓이다. 

이런 소설을 읽으면 짧은 순간이겠지만 동심으로 돌아간다. 마녀가 있고, 여왕이 있고, 또 탐정이 있는 그 익숙하지만 낯선 세계로. 출판된지 얼마되지 않은 따끈따끈한 작품을 기분좋게 읽었다. 작가의 다음 이야기가 기다려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