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리 SF판타지

가제가오카 50엔 동전 축제의 미스터리, 아오사키 유고 일본 추리소설 단편집

책 읽는 밤 2021. 3. 25.

<가제가오카 50엔 동전 축제의 미스터리>는 일본의 젊은 추리소설 작가 아오사키 유고의 추리소설 단편집이다. 헤이세이 엘러리 퀸이라는 별명이 붙은 이 작가의 책 중 한국에 번역된 것은 <체육관의 살인>, <수족관의 살인>, <도서관의 살인> 그리고 <가제가오카 50엔 동전 축제의 미스터리>로 모두 고등학생인 우라조메 덴마가 탐정 역으로 활약하는 이야기이다.

 

작품 소개와 줄거리

탐정역인 우라조메 덴마는 전형적인 사교성이 없는 천재 캐릭터로 고등학생 신분임에도 집을 나와 학교 부실에서 잠자리를 해결하고 있는 비행청소년이다. 물론 탐정 역답게 시험은 시간이 남게 풀어서 전과목 만점을 받는 두뇌 파이며 애니 덕질에 빠진 중증 오타쿠이기도 하다. 

 

메인 화자이자 조수 역으로 볼 수 있는 하카마다 유노는 문학소녀같은 분위기의 탁구부원으로 탁구 부장 사가와 나오를 동경-연모한다. 위로는 형사 일을 하는 오빠가 있는데 경찰과 자주 엮이는 우라조메와 유노 사이를 경계하는 개그신을 담당. 정작 유노는 우라조메의 뛰어난 두뇌는 인정하지만 그 외는 구제불능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유노의 친구 사나에는 그런 구제불능과 유노를 엮어보려는 생각으로 가득하다. 우라조메 교카는 우라조메 덴마의 여동생으로 유노에게 한눈에 반했다. 오빠와는 달리 명문 히텐 학원 중등부에서 다니며 엘리트 코스를 밟고 있는 그녀는 덴마와 우라조메 가의 불화를 보여준다.

 

하카마다 유노와 함께 의욕없는 우라조메 덴마를 사건에 끌어들이는 역할인 유쾌한 소꿉친구 사키사카 가오리는 그의 어두운 가정 사정을 떠올릴 때마다 아련한 분위기를 풍긴다.

 

아오사키 유고의 이전 작품과 비교

이전 작품들(ㅇㅇ관의 살인)은 장편추리소설이라 무거운 느낌이 없지는 않으나 시리즈를 순서대로 읽다 보면 권을 거듭할수록 점점 생생 해지는 캐릭터들의 이야기에 빠져들 것이다.

 

개인적으로 첫 작품인 <체육관의 살인>은 우라조메 시리즈의 추리소설적 퀄리티를 보증하는 책이었다고 생각한다. 이 데뷔작이 작가에게 아유카와 데쓰야 상(장편추리소설 신인상)을 안겨준 것만 봐도 그 수준이 짐작될 것이다.

 

그리고 <수족관의 살인>, <도서관의 살인>에서는 추리로써도 떨어지는 부분이 없지만 점점 등장인물들에 깊이가 더해져 매력적인 캐릭터로 거듭나 추리소설 시리즈로써의 애정을 준다. 도서관의 살인 즈음에서는 하카마다 유노에게 우라조메 덴마의 어두운 과거에 대한 암시가 던져져 그들 사이 관계의 변화를 느낄 수 있다.

 

출판 시기상으로도, 이야기 내 시간 상으로도 <가제가오카 50엔 동전 축제의 미스터리>는 수족관의 살인과 도서관의 살인 사이에 위치한다. 우라조메 덴마라는 캐릭터에 엮인 떡밥은 사실 여기서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되기도 했다.

 

가벼운 일상추리를 소재로 한 단편집이라 사건에 착 달라붙어 이야기를 진행한 장편 시리즈와는 달리 인물들 간의 관계도 충분히 느낄 수 있다. 특히 우라조메 덴마의 여동생 우라조메 교카가 메인인 '그 꽃병에는 주의를'을 읽고 왜 교카라는 이름이 붙었는지 알 수 있었다. 

 

 

가제가오카 50엔에 수록된 최고 단편

제일 마음에 든 단편은 첫 단편인 '원플러스원 덮밥'이다. 주인공 하카마다 유노와 사나에가 어느 날 조리실무사의 괴성을 듣고 가보니 학생식당 밖 풀밭에 나동그라진 밥그릇을 발견한다. 어떻게 된 거냐면 가제가오카 고등학교는 결코 부자학교가 아니기 때문에 학생식당의 규모는 전교생을 감당할 크기가 안 된다.

 

때문에 점심시간의 첫 20분 만에 학생들로 가득 차버려 자리를 잡지 못한 학생들이 생기는데 이들이 밥을 식당 밖에 가져가 먹을 수 있게 식기 반출을 허용한다.

 

물론 사용한 식기는 식당 내 식기반납구에 제대로 반납을 해야 한다. 그런데 누가 땅바닥에 밥그릇을 버리고 가버렸으니 조리실무사가 화가 날 법도 했고 식권 20장을 현상금으로 걸 법도 했다.

 

덕질에 돈 쓰느라 돈이 부족한 우라조메는 이를 듣고 귀가 번쩍 뜨여 범인을 추리해내기 시작한다. 여기서 밥그릇에서 범인의 정체를 특정해내는 추리가 정말 훌륭한 일상 추리다.

 

그외 다른 단편들

그 외 다른 단편들 '가제가오카 50엔 동전 축제의 미스터리', '하리미야 리에코의 서드 임팩트', '천사들의 늦더위 인사', '그 꽃병에는 주의를' 모두 학교에서 일어날 법한 가벼운 사건사고를 다루면서도 등장인물 간의 심리묘사와 관계의 형태를 세밀히 드러낸다. 작가의 이전 장편들에서 점점 맛이 살아나는 주변 인물들의 이야기를 감상하는 기분으로 보기에 좋다.

 

마지막으로 특별부록 '세상에서 가장 불편한 사우나'에서는 그간 암시만 되어왔던 우라조메와 사이 나쁜 아버지와 우라조메가 직접 대면하는 순간으로 우라조메에 버금가는 추리력을 선보이는 아버지의 존재감을 확인할 수 있다.

 

다만 웃긴 점은 단편집 내내 거의 드러나지 않던 우라조메의 덕력이 여기서 드러난다는 것ㅋㅋㅋ나는 도서관의 살인까지 읽고 과연 우라조메의 아버지는 어떤 사람인가 궁금했었는데 정말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 존재감이었다.

(셜록홈스의 마이크로프트 같은)

 

가제가오카 50엔의 아쉬운 점

다만 단점이라면 추리도 만족스럽고 캐릭터들의 개성도 뚜렷해 술술 읽히는 소설이지만 서브컬쳐적인 향이 좀 진한 게 특징이다. 단점이라면 단점이고 장점이라면 장점이지만 라노벨스러운 캐릭터들의 가치관이나 행동, 분위기 등이 심하게 거슬린다면 보기 거북할 수 있다. 

 

그래도 전작들에서 나타난 라노벨 특유의 패러디 드립은 이 책이 제일 덜한 편이다. 하지만 ㅇㅇ관의 살인들을 재밌게 읽고 캐릭터에도 애정이 생겼다면 읽고 후회할 일은 없을 듯 한 일본 추리소설 단편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