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읽는 밤

'술과 농담'을 좋아하는 그대에게

책 읽는 밤 2021. 10. 13.

술과 농담에 관한 재미있는 책이 나왔다. 출판사 시간과 흐름이 간행한 <술과 농담>(2021). 술과 농담은 이 출판사가 기획한 '말들의 흐름' 시리즈의 일곱 번째 책이다. 말들의 흐름은 열 권의 책으로 끝말잇기 놀이를 했다. 끝말 잇기로 이어지는 열 권의 책 제목만 봐도 구미가 당긴다.

 

첫 번째 테마는 커피와 담배다. 두 번째 책은 담배와 영화다. 세 번째는 영화와 시다. 이런 식으로 4. 시와 산책 5. 산책과 연애 6. 연애와 술 7. 술과 농담 8. 농담과 그림자 9. 그림자와 새벽 10. 새벽과 음악으로 이어진다. 모두 다 내가 좋아하는 주제들이다. 

 

커피와 담배는 일 년 삼백육십오일, 단 하루도 거를 수 없는 기호식품이 되었다. 영화와 시도 즐긴다. 산책과 연애도 그렇다. 그림자와 새벽, 음악도 매 한 가지다. 그럼에도 제일 먼저 술과 농담을 픽했다. 왜일까?

 

술과 농담은 여섯 명의 작가가 참여했다. 모두 술과 농담에 대하여할 말이 많은 작가들이다. 첫 번째 작가는 편해영, '몰(沒)'이라는 이름에 술과 농담을 담았다. 조해진 작가는 '조금씩, 행복해지기 위하여' 김나영 작가는 '술과 농담의 시간' 한유주 작가는 '단 한 번 본' 이주란 작가는 '서울의 저녁' 이장욱 작가는 '술과 농담과 장미의 나날'에.

 

사람들은 왜 술을 좋아하게 되었을까? 술을 좋아하는 이유야 사람 숫자만큼 많겠지만 편해영 작가는 이렇게 말한다. 

마시지 못하는 것과 별개로 종종 술 마시는 일에 대해 생각을 한다. 그저 마시는 것이 아니라 술을 유일한 위안으로 삼고, 떨리는 손을 감추고 거짓말을 해서라도 조금 더 마시려 애쓰고, 술 마시는 걸 자책하고 숨기려다 남몰래 마시며 불안한 안도감을 느끼는 일에 대해 생각한다. 술 없이 부끄러움에 맞서기 싫을 때, 세계가 짐짝 같은 무게로 업혀올 때, 오래된 관계를 내가 다 망쳤다 싶을 때, 아무리 달리 보려고 해도 내 마음이 하찮을 때, 가까운 사람에 대한 연민과 실망으로 마음이 그을릴 때, 한마디로 제정신인 걸 참을 수 없을 때 그런 생각을 한다.(26쪽)

 

어떤가? 술을 마시는 사람들은 대충 그러한 것 같다. 살다 보면 술이 유일한 위안이 될 때가 많다. 그런 순간이 반복되다 보면 일상이 된다. 한유주 작가는 "하루도 빼놓지 않고 매일 마신 기간이 십여 년쯤 되는 것 같다. 날마다 취하거나 취하지 않았다."(124쪽)라고 말했다. 공감이 많이 가는 말이다. 술을 안 마셔본 사람은 있어도 한 번만 마셔본 사람은 아마 없을 것이다. 그것이 술의 마력이다.

술과 농담 책표지

그런데 한 번이라도 꽐라 상태에 빠져본 사람이라면 금주를 다짐해 본 적이 있으리라. 술과 농담의 작가 조해진도 금주 시도를 했지만 번번이 실패했다고 고백한다.

'그까짓 맥주 한두 캔'이어서 지레 투항한 건 아니다. 맥주를 안 마시면 손이 떨린다든지 잠을 못 자서는 더더욱 아니다. 다만 그 시간이 좋아서다. 책상 위 전등을 켜고 노트북을 열어 전원 버튼을 누르고 진공관 스피커에서 음악이 흘러나오기를 기다리는 동안 냉장고에서 꺼낸 차가운 맥주 캔 뚜껑을 열 때, 딱 소리와 함께 맥주 향이 맡아질 때, 투명한 유리컵에 맥주를 따를 때, 거품이 차올랐다가 꺼지는 모양을 지켜볼 때, 맥주 한 모금을 들이켠 뒤 화면이 켜진 노트북에서 작업 중인 파일을 불러올 때 나는 행복하다. 살아 있다는 감각에 대한 욕망이 그 무엇에도 의존하지 않으려는 욕망을 이긴 것이라 해도 틀린 말은 아닐 것이다.(56쪽)

 

조해진 작가의 말은 전적으로 거의 맞다. 거품이 차올랐다가 꺼지는 모양을 지켜볼 때는 마치 내 존재가 꺼져가는 듯한 몰입감을 느끼곤 하니까. 습관처럼 매일 밤 한강 수변 산책로를 걸으며 유유히 흐르는 거뭇한 물결을 바라보며 마시는 한 캔의 맥주는 그대로 살아 있다는 감각에 불을 지피니까. 그 쫄깃한 감각은 습관이 되고 루틴이 된다. 

 

술과 농담은 닮은 데가 많다. 술과 농담은 무의식을 여는 창이다. 사람들은 술을 마시며 농담을 하거나 농담을 하면서 술을 마신다. 술과 농담이 어우러지면 사람들은 곧잘 가면을 벗어던진다. 프로이트는 농담과 무의식의 관계를 이렇게 말했다.

농담에서 말하고자 하는 것은 항상 너무 소수의 단어들로 표현된다. 즉, 엄격한 논리학이나 일반적인 사고와 표현의 방식에서 볼 때에는 충분하지 않은 단어들로 표현된다. 결국 농담은 바로 말하려는 것을 말하지 않음으로써 전달하고 있는 것이다. - 지그문트 프로이트, <농담과 무의식의 관계> 95쪽

 

농담이 지나치면 독이 된다. 술도 마찬가지다. 술과 농담에는 삶의 해학이 녹아들어 있다. 삶이 그러하듯 술과 농담도 언젠가 몰(沒)이 되는 순간이 온다. 그 순간이 올 때까지 때로는 취하면서, 또 더러는 취하지 않으면서 생을 관조해야 한다. 삶은, 누구에게나 귀한 법이고 언제나 짧은 것이니까. 나는 술을 좋아하고 농담을 잘 하는 사람들이 좋다. 인생도 그렇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