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 소설

달의 의지, 삼십 대 여성의 연애와 이별 극복기

책 읽는 밤 2021. 10. 3.

도서출판 은행나무의 노벨라 시리즈 여섯 번째 수록 작품인 황현진의 <달의 의지>(은행나무, 2015)는 최근 읽었던 소설 중에서 몰입도가 가장 좋았던 작품입니다. 탄력적인 문장에 분량도 130쪽 남짓이라 단숨에 읽을 수 있는 중편소설입니다.

 

중편 소설 <달의 의지>의 주인공은 삼십대 초반의 여성입니다. 몇 년 전 소설을 한 권 펴냈지만 지금은 공기업의 사보 잡지에 인터뷰 기사를 투고하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작가는 오랜 연애 끝에 남자와 헤어진 삼십 대 여성의 심리를 아주 흥미로운 관점에서 그리고 있습니다.   

 

소설가 황현진은 2011년 장편소설 <죽을 만큼 아프진 않아>로 제16회 문학동네작가상을 수상하며 등단했습니다. 장편소설로는 <두 번 사는 사람들>과 <호재>가 있고 단편소설 <부산 이후부터>, 소설집 <해피 엔딩 말고 다행한 엔딩> 등을 펴냈습니다.

 

소설의 제목 '달의 의지'는 중의적인 의미로 쓰인 것 같습니다. 지구의 위성인 달은 태어날 때부터 언제나 등거리로 지구 주위를 맴도는 운명을 타고났습니다. 또 달의 의지와는 무관하게 지구와 태양의 각도에 따라 주기적으로 부풀었다 꺼졌다를 반복합니다. 

 

소설 속에서는 '달의 의지'라는 말이 딱 한 번 등장합니다. 달을 좋아하는 주인공이 애인과 달뜬 호수가를 산책하면서 호수에도 달이 떴을까 살펴보았습니다. 호수가 달을 품지 않은 것을 보고 주인공은 그것을 달의 의지라고 해석합니다.

"호수의 커다란 반경 안에 달이 들지 못했다. 나는 그것이 달의 의지 때문이라고 여겼다."

 

아마도 작가는 월경처럼 여성의 삶을 달에 비유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주인공 '나'는 스무서넛 살 때 친구 결혼식에서 만난 '한두'와 오랜 연애를 했지만 결국 '그의 의지'대로 최근 헤어졌습니다.

 

소설가 황현진은 남여 관계를 달과 지구의 관계처럼 묘사합니다. 서른세 살 여성 주인공은 주체적이지 못하고 수동적인 시각에서 연애를 해 왔다고 할까요? 작가는 한두와 이별한 주인공의 심리를 이렇게 묘사합니다. 

연인 사이는 별 게 아니었다. 한쪽의 태도를 고스란히 따라 하면 그뿐이었다. 그가 바지를 벗으면 나는 치마를 벗는다. 그가 내 브래지어를 벗기면 나는 그의 티셔츠를 위로 끌어올린다. 그가 혀를 밀어 넣으면 나도 그의 입속에 혀를 집어넣는다. 그가 사랑한다고 말하면 나도 사랑한다고 말한다. 그가 헤어지자고 말하면 나도 헤어지자고 말한다. 그뿐인 것이다. 그가 무심해지면 나도 무심해지게 되는 것이다. 내가 할 수 있고 견뎌낼 수 있는 최대치의 노력을 기울여 무심해진다. 무심하게 굴려고 노력하고 있다는 것 자체에도 무심해진다. 그게 사랑하는 사이의 가장 엄격한 규칙이 된다.(50~51쪽)

 

주인공은 마치 달처럼 한두를 만나고 연애를 해 왔던 것입니다. 주인공은 자신의 의지가 아닌, 남자의 의지대로 연애를 했고, 남자의 의지대로 이별도 맞이했습니다. 

 

한두와 헤어진 주인공은 오디션프로그램을 통해 가수가 된 '에그'를 인터뷰하는데요. 에그는 노래 실력이라기보다 불운한 가정사가 주목 밭으며 오디션 프로그램을 통과한 가수였습니다.  

에그는 그저 슬픈 이야기의 주인공으로만 유명했다. 나는 그 이야기를 듣기 위해 에그를 찾았다. 인터뷰의 주제가 얼마나 성공했느냐보다 얼마나 불행했나가 중요했다. 잡지의 관계자들은 하나같이 에그를 추천했고 정작 누구도 에그를 대체할 다른 사람을 떠올리지 못했다.(21쪽)

 

에그와 인터뷰를 할수록 주인공은 그가 실망스러웠지만 묘하게도 그에게 끌리고 있는 자신을 발견합니다. 이별을 극복하기 위한 가장 편한 방법중의 하나가 새로운 연애를 시작하는 것이라는 말처럼 주인공은 술에 취해 에그와 하룻밤을 보냅니다.

지하계단을 오르는데 에그가 몇 번씩이나 멈추어서서 내게 짧은 키스를 해댔다. 도무지 입을 다물고 있을 겨를이 없었다. 앞니가 부딪쳤고 웃다가 서로의 입술을 물고 숨만 내쉬다가 껴안았다. 계단 위 천장에 매달린 등이 환했다. 남들에게 보여주기 아주 좋은 ㅅㅅ가 시작되고 있었다(72쪽)

 

물론 주인공은 불품없는 에그와 연애를 할 생각은 없었습니다. 그럼에도 그녀가 에그와 하룻밤을 보낸 것은, 달의 의지라고밖에 달리 설명할 길이 없는 것 같습니다.

 

소설가 황현진은 작가의 말에서 이별 뒤에 여러 감정이 들끓는데 그중에서 제일 이상한 것은 죄책감에서 벗어났다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사랑하는 동안 작가를 지배한 감정 중에서 죄책감이 가장 강력했다는 뜻입니다.

 

자전적 소설의 성격이 강한 <달의 의지>는 의지가 없는 것처럼 보이던 달에게도 의지가 있다는 항변으로도 읽힙니다. 주제의식이야 뭐 어쨌든 재미있고, 연애 묘사가 야하면서도 상당히 빠르게 후다닥 읽히는 소설입니다.

 

삼십 대 여성 독자라면 쉽게 공감을 하면서 재미있게 읽으실 수 있을 것입니다. 이렇게 말하면, 세상에는 워낙 웃기는 자장들이 많아서 또 태클을 거는 분이 계실지도 모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