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 소설

장류진 일의 기쁨과 슬픔, 사시는 동안 적게 일하시고 많이 버세요

책 읽는 밤 2021. 1. 13.

장류진의 <일의 기쁨과 슬픔>(2019)은 청춘남녀의 삶과 연애 등 20-30대의 직장인이라면 공감할 만한 8편의 소설을 묶은 소설집입니다. 표제작인 '일의 기쁨과 슬픔'은 21회 창비신인소설상을 받은 작품으로 장류진의 데뷔작이기도 합니다.

 

창비가 홈페이지에서 '일의 기쁜과 슬픔'을 무료 공개하자 40만 조회수를 기록하는, 흔치 않은 관심을 불러일으켰습니다. 이 소설의 주인공 김안나는 판교의 테크노벨리의 소규모 스타트업 회사에 다니는 막내둥이인데요. IT 회사에 다니지 않았으면 절대로 알 수 없는 아주 디테일한 세부묘사가 많은 공감을 불러일으켰던 소설입니다.

 

장류진은 소설 속 김안나처럼 대학을 졸업하고 판교에서 작은 한 IT 회사에서 7년을 일하다 퇴사하고는 '일의 기쁨과 슬픔'을 썼다고 해요. 그리고 다시 회사에 들어갔는데 출근 삼일 째 되던 날에 등단 소식을 접했고, 이후 이 소설은 대박을 터트리게 돼요.  

 

KBS2에서 '일의 기쁨과 슬픔'을 원작으로 드라마로도 방영했고 책으로도 출판됐어요. 지금은 "사시는 동안 적게 일하시고 많이 버세요"라는 문구를 독자들에게 적어주며 소설가로서 행복한 일상을 보내고 있는 소설가가 되었어요. 물론 두 번째 퇴사도 실행했고요.

 

표제작 '일의 기쁨과 슬픔'은 스마트폰의 위치를 기반으로 중고거래를 할 수 있는 앱 '우동 마켓'을 만드는 회사에 다니는 주인공 안나와 월급을 신용카드 포인트로 받아야 되는 직장인 이지혜의 이야기입니다.

 

'우동 마켓'은 우동을 만드는 것이 아닌 '우리 동네 중고 마켓'의 준말이라고 해요. 아주 감각적인 작명 센스! 그리고 이 회사는 대표가 수평적인 업무환경을 조성한답시고 모든 직원이, 전 직원이라고 해봤자 겨우 10 명지만 영어 이름을 사용해요.

 

김안나는 아무 생각 없이 영어 이름도 '안나'로 해버렸는데, 그게 또 은근 스트레스예요. 모두들 안나, 안나 하면서 은근슬쩍 김안나 씨에게 반말인 거예요. 그러니 회사에서 영어 이름으로 바꿔봤자 상급자들만 좋은 거라는 거.

 

이 회사는 애자일 업무를 한다고 아침마다 스크럼을 하는데, 그게 또 대표의 미주알고주알 넋두리 장으로 변질되면서 직원들은 한 시간 가량을 스트레스로 보내야 되는 상황인 거예요. 

 

그리고 갑질 끝판왕의 카드 회사에 다니는 '거북이 알' 차장 이지혜 씨 이야기는 아, 진짜 열 받는 이야기인데요. 어디선가 이런 보도를 접했던 기억 다들 있으시죠? 하긴, 워낙 갑질 사례가 풍부하게 보도되는 시대라 기억이 안 날 수도 있겠네요.

 

이지혜 씨는 루보프 스미르노바의 내한 공연 소식을 공지하는 바람에 회장이 자신의 인스타에 올릴 기회를 빼앗아갔다며 진노를 사게 되고, 월급마저 카드 회사 포인트로 받게 되는 비참한 상황에 처하게 돼요.

 

이지혜는 '을'로 살아가야 하는 모멸감에 울다 "돈도 결국 이 세계, 우리가 살아가는 시스템의 포인트"라고 발상의 대전환을 하고 우동마켓에서 포인트를 현금화하는 새로운 시스템을 만들어요.

 

덕분에 김안나와 이지혜는 서로 만나 이야기를 나누게 되고 이렇게 근사한 소설로도 태어나게 됐지만요. 

 

소설집 <일의 기쁨과 슬픔>에 실린 8편의 소설 모두 아주 빠르게 읽히는 소설이에요. 매끄러운 문장에 내러티브 전개도 깔끔해요. 등장인물들이 모두 뜬구름 잡는 이야기를 하는 것이 아닌 당장 눈 앞에 닥친 현장의 이야기를 찰지게 하기 때문에 더 잘 읽히는 것 같아요.

 

첫 번째 소설 '잘 살겠습니다'는 청첩장을 둘러싸고 '오만 원을 내야 오만원을 돌려받는 거고, 만 이천 원을 내면 만 이천 원짜리 축하를 받는 거'라고 믿으며 계산을 물론 매사에 딱 부러지는 주인공과 직장 5년 차에도 세상 물정 모르는 총무과 라푼젤이자 전체회신녀라는 별명을 가진 빛나 언니의 이야기도 그래요.

 

소설 '나의 후쿠오카 가이드'는 읽기 좀 거북한 이야기인데요. 서른셋 살 지훈이 동갑내기 지유를 바라보는 거북한 시선이 적나라하게 드러나요. 결혼하고 석 달 만에 남편을 사별한 지유는 호쿠오카에 살아요. 지훈은 어떻게라도 지유와 하룻밤 자기 위해 후쿠오카로 날아가요.

 

지유의 제안으로 혼탕에 가기 전 지훈은 그 기대로 한껏 부풀어 오르죠.

'옥상 온천에 올라가기 전, 방 안에서 푸시업을 했다. 오십 개쯤 했을까. 귀밑에서 땀방울이 뚝 떨어졌다... 백 개를 채우고 화장실 가울에 상반신을 비춰봤다. 가슴과 배, 삼두에 차례로 힘을 줬다. 그리고 신속하고 깔끔하게 자위했다. 여러모로 한결 편해졌고, 이제야 비로소 혼탕을 문제없이 즐길 수 있을 것 같았다.'(79쪽)

 

그러나 그 기대는 이런 절망을 바뀌고 맙니다.

'심지어 나는 울고 있었다... 탁자를 주먹으로 내려쳤다. 그러자 뚜껑을 닫지 않은 채로 올려놨던 작은 생수병이 바닥으로 굴러 떨어졌고 바닥에 두었던 백백 위로 물이 쏟아졌다. 나는 황급히 백팩을 집어 들었다. 백팩의 앞주머니 지퍼가 활짝 열려 있었다. 이 XX년이 열었으면 닫아놔야 할 거 아냐. 소중한 황금연휴가 엉망이 되어 버렸다.'(97쪽)

 

우리 시대 젊은 남녀들이 다 그런 것은 아니겠지만 결국 남자는 남자의 시선대로, 여자는 여자의 시선대로 볼 수 밖에 없다는 것이, 그리고 그 시선에 대하여 우리는 할 것이 아무것도 없다는 현실이 아쉬운 부분으로 남은 소설이었습니다.

 

그리고 거대한 조류로 이 세상이 바뀌기 전에는 그 시스템 안에서 살아가는 개인은 어쨌든 최선을 다해 각자 현명하게 작은 행복을 느끼며 일상을 버티어낼 수밖에 없다는 이야기는 개운치 않은 뒷맛을 남깁니다.

<일의 기쁨과 슬픔>은 조금은 무책임하고 조금은 위장된 기쁨을 추구하는 소설이 아닌가 합니다. 그럼에도, 그렇게 해서라도 소소한 기쁨을 누리고 사는 방법을 이 소설속 주인공들처럼 스스로 찾아 터득해야 그나마 세상을 살아갈 수 있다는 답답한 현실을 직시하게 만드는 소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