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 소설

안톤 체호프 단편소설 '개를 데리고 다니는 여인', 새로운 사랑이 가능할까

책 읽는 밤 2021. 2. 28.

세계 3대 단편 소설가로 꼽히는 안톤 체호프의 <개를 데리고 다니는 여인>(문학동네, 2016)은 어느 시대에나 일어날 수 있는 연애 심리를 잘 담은 대표적인 단편 소설입니다. 블라디미르 나보코프는 이 소설에 대해 지금까지 쓰인 가장 위대한 단편소설이라고 극찬을 했을 정도로 읽는 묘미가 짜릿합니다.

 

문학동네가 펴낸 <개를 데리고 다니는 여인>에는 하비에르 사발라의 그림이 삽화로 쓰였는데, 상징적이고 전위적인 여성의 그림들이라 사람들이 볼 때는 책을 살짝 덮어가며 읽어야 했습니다. 

 

이 이야기의 줄거리는 드미트리 드미트리치 구로프가 러시아 크림반도에 있는 휴양도시 얄타에서 '개를 데리고 다니는 여인'을 만나 연애감정을 느끼고 헤어지 지고 나서도 서로를 잊지 못해 다시 만나 미래를 약속하는 것으로 끝나는 이야기예요. 버지니아 울프의 말처럼 우리에게 눈부신 자유를 느끼게 하는 체호프식 열린 결말이랄까요.

 

구로프가 어떤 남자이냐하면, 마흔이 채 되지 않은 나이이지만 열두 살 난 딸 하나와 중학교에 다니는 아들 둘이 있는 은행원이에요. 여자들을 '저급한 인종'이라고 치부하면서도 남자들만의 모임보다 여자들과 같이 있을 때 아주 편안해지면서 무슨 말을 해야 하고 어떻게 처신해야 할지 본능적으로 아는 남자이에요.

 

구로프의 외모와 성격, 그리고 타고난 기질 자체에 꼭 집어 말할 수는 없지만 뭔가 매력적인 요소가 있었고, 거기에 끌린 여자들은 그에게 마음을 빼앗겼는데, 구로프는 그걸 잘 알았고, 그 자신도 어떤 힘에 의해 의해 여자들에게 이끌리는 스타일의 남자예요.

 

개를 데리고 다니는 여인, 안나 세르게예브나도 구로프를 보자말자 그에게 이끌려요. 안나에겐 부유한 남편이 있었지만, 더욱이 구로프와 나이차가 두배 가까이 났지만요. 그를 알고 지낸 지 일주일 만에 증기선이 들어오는 걸 보러 부두에 데이트를 하러 가요. 구로프가 갑자기 그녀를 껴안고 키스를 하고 안나 세르게예브나의 호텔 방에서 사랑을 나누게 되지요. 

 

사랑을 나눈 후 세르게예브나는 '남편을 속인게 아니라 자신을 속였다'며 "이제 당신이 가장 먼저 나를 존중하지 않을 거예요"라고 눈물을 글썽입니다. 구로프는 지금껏 만나왔던 여자들과는 다르게 안나 세르게예브나가 '내내 미숙한 소녀처럼 소심하고 서툴렀으며, 어색한 감정을 내보이며 자신이 타락했다는 여기는 걸' 알아봐요.

 

유부남, 유부녀의 불륜은 흔히 그렇듯 결말에 초점을 맞추잖아요. 그러나 안톤 체호프의 <개를 데리고 다니는 여인>은 그런 상투적인 결말 대신에 미래를 독자의 상상에 맡깁니다. 체호프의 재능을 아꼈던 톨스토이는 이 단편소설에 대해서는 혹평을 했다고 하는데요. 아마도 불륜에 대한 벌이 빠졌다는 거겠지요.

 

단편 <개를 데리고 다니는 여인>은 줄거리보다는 섬세하고 미묘한 느낌을 자극하는 문장들을 읽는 맛을 더하는 소설이에요. 

 

"아침 안개 속에서 어렴풋이 얄타가 보였고 산꼭대기에는 흰 구름이 걸려 있었다. 나뭇잎 하나 흔들리지 않았고 매미들만 소리 내 울었다. 아래쪽에서 들려오는 단조롭고 먹먹한 파도 소리만이 우리를 기다리는 평온과 영면에 대해 말해주고 있었다. 이곳에 얄타도 오레안다도 존재하지 않던 때에도 그렇게 아래쪽에서는 파도 소리가 들렸을 것이다.

 

지금도 그 파도소리가 울리고 있고, 우리가 모두 사라진 후에도 그렇게 무심하고 먹먹하게 계속 울릴 것이다. 이런 항구성에, 우리들 각자의 삶과 죽음에 대한 대한 이 완전한 무관심 속에, 아마도 영원한 구원의 약속, 지상에서의 삶의 끊임없는 움직임과 완성을 향한 무한한 진보의 약속이 숨어 있는지도 모른다."(26-28쪽)

 

이 문장이 좋아 몇번이고 필사를 하며 아로새겼어요. 이 단락은 구로프와 안나가 얄타에서 사랑을 뒤로 한채 각기 생활의 터전으로 돌아가기 전 오레안에서 보낸 밤 풍경을 묘사한 문장입니다. 

 

모스크바로 돌아간 구로프는 한 달 정도 지나면 안나 세르게예브나도 기억 저편 안개 속으로 사라지고 다른 여자들처럼 어쩌다 꿈에서나 애처로운 미소를 지으며 나타날 것이라 생각했지만, 날이 갈수록 그녀에 대한 기억이 점점 더 거세게 불타올랐어요. 그에게 안나는 여느 여자와 달랐던 것이지요. 

 

아이들도 지겨워지고 은행일도 지겨워진 구로프는 아무일도 하기 싫었고 아무 데도 가고 싶지 않은 상태에 빠져 오직 안나 세레게예브나 생각으로만 가득 차게 됩니다. 그리고 급기야 안나가 살고 있는 S시로 찾아가 만나는 모험을 하고, 안나 역시 모스크바로 숨어들어 위험한 사랑을 계속합니다.

 

그러다 둘은 드디어 결심을 하죠. 새로운 삶을, 새로운 사랑의 시작을 위하여 멀고도 험한 길을 가기로요. <개를 데리고 다니는 여인>은 여기서 끝이 납니다. 여러분은 이들의 앞날에, 이들의 사랑에 행복을 빌어주고 싶어세요, 아니면 톨스토이처럼 벌을 내리고 싶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