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 소설

[소설 아몬드] 우리에게는 아몬드가 있을까?

책 읽는 밤 2020. 4. 2.

작품 소개
손원평 작가의 첫 장편 데뷔 작품으로 제10회 창비 청소년 문학상 수상작이다. 출판평론가 한기호는 소설 <아몬드>를 '한국형 영 어덜트 소설'의 시작을 알리는 작품으로 평했지만, 이 소설을 장르문학으로 보기 어렵다. 아마도 그의 평은 좋은 소설의 판촉을 돕기 위한 '선의'로 짐작된다. 그렇다면 나도 굳이 반대할 생각은 없다.

영 어덜트 소설은 현실과 동떨어진 극단적인 판타지의 세계에서 주인공들이 분루를 삼키며 성장한다는 것이 기본 설정이지만 <아몬드>는 주인공이 현실 세계에서 발을 딛고 결핍을 치유해가는 성장 스토리를 담은 순수 문학에 속한다.

손원평 작가는 <서른의 반격>으로 제5회 제주 4.3 평화문학상을 수상했고, 여러 단편영화들을 감독했고, 스릴러 영화 <침입자>(송지효, 김무열 주연)를 3월 개봉하려다 코로나로 연기되어 장편 영화 데뷔를 미루게 되었다. 

영화 <침입자>의 메가폰을 잡은 손원평 감독

아몬드의 줄거리
의학계에 보고된 바 있는 '감정표현 불능증'이  있는 주인공 16세 소년 선윤재는 '아몬드'로 별칭 되는 편도체가 작아 타인의 감정을 이해하지 못하고 공포감을 느끼지도 못한다.

윤재는 타인의 행동에 대하여 언제 감사해야 되고 언제 기분 나빠해야 되는 지를 알지 못하므로 학교 생활이 어렵기만 한다.

할머니의 사랑과 엄마의 행동 매뉴얼로 학교생활을 겨우겨우 지탱해 나가던 윤재는 그러나, 크리스마스이브날 비극적인 사고로 할머니와 엄마를 잃고 혼자 남게 된다.

학교에서는 할머니와 엄마가 죽어가는 상황에서 윤재가 어떤 분노 섞인 행동도 표출하지 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윤재는 괴물로 불리고, 어느 날 그의 앞에 또 다른 괴물 '곤이'가 전학 온다. 네 살 때 미아가 되었던 곤이는 윤재와는 반대로 세상에 대한 적개심으로 가득 차 있다.

세상에서 괴물로 불리는 윤재와 곤이는 서로의 처지를 이해하고 의지하며 새로운 삶의 길을 걸으며 서로에게 위안이 되고 희망이 되는 삶의 가능성을  찾아간다.

우리에게는 아몬드가 있을까?
윤재와 곤이의 이야기를 읽고 나에게는 아몬드가 있을까 생각해 보았다. 우리 뇌에서 공감을 관장하는 편도체는 생긴 모양이 아몬드를 닮아 아몬드라 불리기도 한다고 한다.

윤재는 태생적으로 아몬드가 작아 공감 능력이 현저히 떨어졌다. 그래서 엄마가 만들어준 행동 매뉴얼대로 친구가 호의를 베풀면 '고맙다'고 말했다. 엄마를 잃고 나서 윤재는 친구들의 행동에 어떤 반응을 할지 생각해 보았지만 쉽게 답을 찾지 못했다.

그러나 곤이를 만나고 나서부터는 행동 매뉴얼 없이도 스스로, 서서히 행동할 수 있게 된다. 어쩌면 우리는 평생 행동 매뉴얼대로 살아가는 것인지도 모른다. 지극히 의례적이고 관습적인 방식으로 타인을 대하는 것이다.

그리고 세상은 그 크기만큼 아몬드가 있을까라는 생각도 했다. 세상 역시 우리처럼 옛날부터 내려오는 관습적인 행동 매뉴얼대로 돌아가고 있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몬드 독후 기대감
타인의 감정을 공감하지 못하는 윤재는 해냈다. 그리고 분노로 가득 차 있던 곤이도 해냈다. 그 힘은 어디서 비롯되는 것일까? <아몬드>를 읽고 오랫동안 윤재와 곤이라는 친구가 내 가슴에 남았다.

세상은, 우리는 판에 박힌 웃는 얼굴보다, 관습적이고 정치적인 올바름보다 윤재와 곤이처럼 살갑지는 않지만 아무 조건 없이, 이유 없이, 진심 서로를 바라보는 눈빛을 더 간절히 원하는 것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