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읽는 밤

김얀 '낯선 침대 위에 부는 바람' 이상한 여행기

책 읽는 밤 2020. 3. 21.

김얀의 <낯선 침대 위에 부는 바람>을 읽게 된 것은 순전히 내 블로그 이름 때문이었다. 블로그 이름을 "낯선 세계에 부는 바람"으로 바꾸면서 혹시 다른 블로그에서 쓰고 있는 이름은 아닌지 검색해 보았다.

그랬더니 검색 결과에 뜬금없이 이 책이 떴다. 어떤 내용인지 궁금하여 찾아 읽어보는 수고를 했다. 책장을 넘기자마자 실망감이 밀려왔다.

작가는 <낯선 침대 위에 부는 바람>은 13개국 낯선 침대 위에서 만난 13명의 남자 이야기라고 했다. 그런데 13개국에 대한 이야기는 없었고 그녀가 만났던 남자 이야기만 있었다.

첫 장 '붉은색 다이아몬드를 샀다'는 난잡한 섹스 행위를 진부한 글로 옮겨 놓은 도색 잡지를 읽는 듯했다. 그러니까 이 책은 여행 에세이라기보다는 섹스 후에 쓰는 허무한 잡념을 적어놓은 일기 같은 것이었다. 

그러니 침대 위의 이야기만 있고 그녀가 여행한 나라에 대한 이야기는 없다. 13개국에 대해 본 것이 없었으니 쓸 이야기도 남자 말고는 없었으리라.

"한때 나의 연인이었던 S는 '나의 문제'가 모든 남자와 섹스로 관계를 유지하려는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그건 S의 오해였다. 나는 매번 그렇지 않다고 반박했지만, 그는 매번 믿지 않았다. 그래서 결국 우리는 헤어졌다."

작가는 이야기를 쓰다보니 잔뜩 웅크리고 있는 상처투성이 자신이 보였다고 했다. 그 말은 아마 맞을 것이다. 단 한 번도 사랑을 하지 못한 사람이 얼마나 불행할까를 생각해보면 그녀의 저 말은 맞기도 하다. 

그녀는 남자를 만나 사랑을 한 것이 아니라 단지 허기를 달래듯 육체적인 관계에만 집착했던 것이 아니었을까라는 느낌이 든다. 그러니 그녀의 연인이었던 S의 말도 완전히 틀린 말은 아니었던 것 같다.

작가는 서른이라고 했다. 한 번도 인생을, 사랑을, 책임을, 관계에 대하여 용기를 갖고 성실하게 대하지 못했던 것 같다. 책의 편집도 작가의 인생을 닮은 구성이었다. 내용과 잘 어울리지 않는 사진들로 분량을 채웠다. 

책을 다 읽고 블로그 제목을 바꾸어야 하나 잠시 고민했다. 그러나 그냥 두기로 했다. 처음 의도한 신선하고 신비로운 어감이 묻어나는 어휘를 오용할 마음은 전혀 없었으므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