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 소설

포스트맨은 벨을 두 번 울린다 줄거리와 결말, 하드보일드 소설

책 읽는 밤 2022. 4. 19.

포스트맨은 벨을 두 번 울린다 줄거리와 결말

느와르 소설을 창시한 제임스 M. 케인의 데뷔작

포스트맨은 벨을 두 번 울린다(1934)는 하드보일드 소설의 대표작이자 알베르 카뮈가 실존주의 문학의 대표작인 <이방인>의 영감을 이 소설에서 얻었다고 밝히기도 한 미국 문학의 고전입니다.

소설 <포스트맨은 벨은 두 번 울린다 The Postman Always Rings Twice>는 미국 출판업계 최초의 베스트셀러였고, 현재까지도 영화와 오페라, 연극으로 재생산되고 있습니다. 동명의 영화는 1946년과 1981년, 두 번 만들어졌습니다.

 

3만 5천 자에 불과한 이 짧은 소설의 어떤 점이 대중의 호기심을 자극하는 것일까요? 영화가 원작 소설을 잘 반영하고 있긴 하나, 디테일에는 아무래도 소설에는 미치지 못하므로 여기서는 <포스트맨은 벨을 두 번 울린다>(이만식 옮김, 민음사, 2007)를 중심으로 소개하겠습니다. 

 

소설에서는 한 번도 포스트맨이 등장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1981년 제작된 영화가 '우편배달부는 벨을 두 번 울린다'로 개봉되었을 때, 체신부의 항의로 지금의 제목으로 변경하게 된 해프닝을 일으키기도 했습니다. 

 

정작 작가가 생각한 처음 제명은 '바비큐'였고, 그 뒤로 '사랑이냐 돈이냐', '악마의 수표책' 등 여러 가지가 검토되다가 마지막으로 주인공 프랭크의 운명을 묘사하는데 포스트맨이 적합한 은유라고 하여 지금의 제목으로 정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여자 주인공 코라역의 라나 터너(1946작 영화)

이 소설의 모티브가 되었던 실제 사건에서 남편을 살해한 여자가 우편배달부에게 보험지급증서를 자신에게 직접 배달할 것과 그 신호로 초인종을 두 번 울리는 것을 신호로 삼았다고 합니다.

 

그 사건으로 그 신호는 성적 불성실을 뜻하는 진부한 표현이 되었다고 작품 해설에서 밝히고 있습니다. 작가는 우편배달부가 가 버리기 전에 언제나 두 번 벨을 울리거나 두 번 노크하는 영국과 아일랜드의 옛 전통을 떠올렸다고 합니다.

 

굳이 영국의 옛 전통까지 않더라도, 또 포스트맨이 아니더라도, 대개 벨을 한 번 울리고 가는 사람은 없겠지요. 즉, 오게 될 일은 꼭 오게 된다는 중의적인 뜻도 제명에 내포하고 있다고 볼 수 있겠습니다. 

 

민음사판 책표지

포스트맨은 벨을 두 번 울린다 줄거리

이 소설의 화자이자 주인공인 프랭크 체임버스는 방랑벽 깊은 스물넷 청년입니다. 캘리포니아 국도변의 한 작은 마을, 샌드위치 식당 "쌍둥이 떡갈나무 선술집(영화 자막에서는 '트윈 오크스'로 번역)"에서 프랭크는 주린 배를 번드레한 말로 채웁니다.  

 

식당 주인 닉 파파다키스는 그래도 돈 한 푼 없는 그에게 한 끼를 대접하고 그가 식당에서 일하면 좋겠다고 제안을 합니다. 가진 것 없어도 가오로 거들먹거리던 그였지만 닉의 아내 코라를 보자마자, 그는 내심 마음을 완전히 굳히게 됩니다.

 

코라의 등장

프랭크가 코라를 처음 만났을 때를 묘사한 문장인데요. 코라를 등장시키는 방식이 소설과 영화가 꽤 다릅니다. 영화에서 코라 역을 맡은 라나 터너는 입술이 도톰한 편이지만, 제시카 랭은 그렇지가 않아서, 원작을 읽고 영화를 보시는 분들이라면 이 부분에서부터 봅 라펠슨이 연출한 1981년작은 몰입하기가 쉽지 않을 거란 생각이 듭니다.

 

이러한 차이점(사실, 작품 감상에는 가장 큰 부분이긴 하지만요) 외에는 두 영화 모두 원작의 큰 줄거리를 충실하게 압축적으로 반영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언제나 디테일이 작품의 수준을 가르는지라 1946년 제작된 테이 가넷 감독이 연출한 작품을 먼저 보시는 게 순서일 것 같습니다. 

 

영화 포스터(1946)

코라는 아이오와주 디모인에 있는 고등학교 미인대회에서 우승했고, 부상으로 할리우드로 여행을 가게 됐고, 영화배우를 꿈꾸었으나 별 볼 일 없었고, 로스앤젤러스 간이식당에서 사내들과 놀아나다 금사계를 차고 나타난 지금의 나이 든 남편을 만나 시골에 정착하게 된 것입니다.

 

다음 날, 폭풍으로 식당 간판이 떨어지자 새 간판으로 바꾸기 위해 닉이 시내에 간 틈을 이용해 프랭크는 식당 문을 걸어잠그고는 코라의 입술을 욕망했던 대로 뭉개고 맙니다. 그가 그녀의 입술을 너무 깊이 깨물어 입속으로 피가 뿜어져 나오는 걸 느끼고, 그녀를 안고 2층으로 올라갈 때 피가 그녀의 목덜미를 타고 흐를 정도로요.

 

그 후로 프랭크는 틈이 날 때마다 코라를 맘껏 즐겼고, 코라 또한 길에서 벌어지는 온갖 일들에 대해 훤한 방랑자, 프랭크를 사랑한다고 고백합니다.

"난 견딜 수가 없어. 당신한테 푹 빠졌어. 프랭크, 내 말 무슨 뜻인지 알지? 완전히 반했어"
"알아"
"게다가 난 저 그리스인(남편)을 증오해"

 

사랑을 끊임없이 확인하고 다짐하던 둘은 남편을 살해할 모의를 합니다. 닉이 목욕할 때 그를 내려쳐서 익사할 때까지 그녀가 꾹 누른다는 어처구니 없는 계획이었는데, 다행스럽게도 갑작스러운 정전이 일어나 남편은 죽지 않고, 일주일 동안 병원에 입원했다 퇴원할 정도에 그칩니다. 

 

남편이 병원에 입원해 있는 일주일 동안 프랭크와 코라는 미친듯 서로의 몸을 탐닉했고, 남편이 퇴원하는 날에 맞추어 둘은 짐을 싸고 방랑자가 되기로 결심하고 길을 나섭니다. 

 

'한 남자의 아내를 훔치는 건 별일 아니지만, 차를 훔치는 건 절도죄'라는 프랭크의 말에 따라 둘은 버스 정류소까지 3킬로미터를 히치하이크를 해서 가기로 했지만, 차는 잡히지 않습니다. 

 

1킬로미터쯤 갔을 때, 둘은 지쳤고, 코라는 더러워진 신발에 우느라고 제대로 걷지도 못하는 지경이 되었습니다. 코라는 다른 곳으로 가더라도 초라한 곳에서 살면서 일자리를 찾게 될거라며 혼자 돌아가버립니다. 

 

프랭크는 혼자 도시를 여행하다 코라와 우연히 마주치기를 기대하며 다시 되돌아가, 그들 부부가 장을 보는 시장 주변을 어슬렁거리기 시작합니다. 때마침 그를 발견한 닉이 엄청 반갑게 여행에 초대합니다.

 

아내를 위해 내일 피에스타(라틴 아메리카 종교 축제)를 보러 센타바버라에 갈 건데, 같이 가서 보고, 돌아와서 같이 일하자고 말입니다. 이 생각 없는 남편은 늘 프랭크에게 일자리를 제안합니다.

 

프랭크가 쓸모가 있기를 원하는 코라

그날 밤, 프랭크와 재회한 코라는 "당신은 아무 쓸모가 없다"며 그를 매섭게 몰아붙입니다. 프랭크와 말싸움을 하던 코라는 센타바버라에 남편과 프랭크, 셋이서 차를 타고 가야만 하는 상황을 이야기하다 말을 문득 멈춥니다. 그때 서로의 몸이 닿았고,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그들은 알았습니다. 남편 살해 모의가 다시 시작된 것입니다.

 

그들은 어두운 밤, 센터바버라로 가는 길에 로스앤젤러스에서 최악의 구간이라는 말리부 해변 방면으로 빠져 렌치로 남편을 내려친 후, 차를 낭떠러지로 밀어뜨렸습니다. 사고로 위장하기 위해 프랭크는 코라의 눈을 세게 때렸고 블라우스도 찢었습니다.

 

위험한 순간에서도 서로를 유혹하는 코라와 프랭크

그 다급한 와중에도 코라는 "내 옷을 찢어! 찢어 버려!"라고 외치며 그를 원했고, 프랭크는 욕정에 굴복하여 그녀를 가졌습니다.

 

아, 이 대목은 너무나도 섬뜩하고 관능적인 장면입니다. 코라가 팜므파탈의 화신이랄까요? 아니면 프랭크야말로 바닥까지 내려간 욕정의 노예라고 할까요? 그런 점에서 존 가필드가 연기한 프랭크는 너무 순박하다는 인상입니다. 

 

새킷 검사의 추궁

프랭크가 중상을 입으면서까지 교통사고로 위장했지만, 검사 새킷은 그들이 남편을 살해했다는 걸 간파합니다. 닉 파파다키스에게는 1만 4천 달러를 주고 구입한 부동산이 있었고, 1만 달러 짜리 보험에도 가입되어 있었으니까요. 

 

검사 새킷이 프랭크와 코라의 범행을 정교하게 추리해가는 장면은 이 소설을 읽는 재미 중의 하나입니다.  

 

코라의 관능을 추겨세우는 검사

검사 새킷은 코라와 당연히 잤을 거라는 말로 프랭크를 먼저 압박합니다. 자신이라도 거기에 있었다면 교수형에 처해지더라도 문을 발로 차고 들어갔을 거라고 말입니다. 

 

코라는 너무나도 선정적이었고, 그래서 프랭크는 그녀와 잤고, 남편에게는 부동산과 보험이 있었으니 범행 동기는 충분했던 셈입니다. 그런데도 우리의 검찰은 최근 '계곡 살인 사건'을 처음에는 단순 변사로 내사 종결했다지요. 계곡 살인 사건의 그녀가 코라만큼 안 관능적이라 그랬을까요? ㅜㅜ

 

검사의 추궁에 흔들리는 프랭크

어쨌든, 프랭크는 넉살좋은 검사의 꼬임에 넘어가 코라가 남편과 자신, 둘 다를 살해하려 했다고 하는 고소장에 서명하게 됩니다. 

 

프랭크는 남편이 보험에 들어있다는 말을 코라에게서 들은 바가 없었던 터라, 검사의 말대로 그녀를 의심하기 시작했던 것입니다. 이때부터 프랭크와 코라는 서로를 의심하기 시작합니다.

 

변호사 카츠의 사악한 작업

그러나 세상에는 뛰는 자 위에 항상 나는 자가 있는 것인가 봅니다. 바로 카츠 변호사입니다. 그는 남편이 한 개의 보험이 아닌 세 개의 보험에 가입하고 있다는 사실과 그 보험들이 이 사건과는 관계가 없다는 것을 알아채고, 재빨리 코라의 유죄를 인증했습니다.

 

그리고 세 보험사를 불러 코라의 유죄가 인증되고, 프랭크가 손해배상 청구를 하면 보험사는 3만 달러를 지급해야 한다며 '거래'를 부칩니다. 두 보험사가 5천 달러씩 갹출하여 검사가 알고 있는 보험사에 주어 보험금을 지급하기로 합의합니다.

 

최후 공판에서 보험사가 코라의 유죄 증거가 없음을 주장하고, 그녀에게 보험금을 지급하겠다고 하자, 치안판사는 결국 무죄를 선고합니다. 

 

작가 제임스 M. 케인이 워낙 공을 들여 논리 전개를 하는 바람에, 새킷 검사와 카츠 변호사의 두뇌싸움을 읽는 재미가 쫄깃쫄깃하여 책을 손에서 놓지 못하는 증상이 나타나긴 하는데, 여전히 고개가 갸웃하긴 합니다. 법정이 그렇게 허술해서야 쓰겠는가는 마음이죠.

 

서로를 의심하기 시작하는 프랭크와 코라

아무튼, 카츠의 뛰어난 변호 작전으로 프랭크와 코라는 풀려나고 1만 달러 보험금도 챙깁니다. 그리고 둘은 서로의 육체에 빠지면서도 서로가 서로를 죽일까 봐 끊임없이 의심을 키워가는 파멸의 길로 접어듭니다.

 

소소하게는 코라 어머니가 장례를 당하자, 프랭크는 그 새를 참지 못하고 방랑벽이 도져 일주일 간 어느 여자와 바람을 피워다 돌아와 그녀를 더욱 분노케 했고,

 

카츠 변호사 밑에서 일하던 한 놈이 찾아와 돈을 요구하는 소동을 벌이기도 했으니, 서로가 서로를 향하는 의심을 더욱 부채질하게 만들었습니다.

 

포스트맨은 벨을 두 번 울린다 결말

코라는 프랭크의 아이를 가졌고, 코라는 그에게 마지막 기회를 줍니다. 내일 수영에서 살아 돌아오면 결혼을 하자고.

"프랭크, 수영하다가 날 죽일 수도 있어. 지난번에 했던 것처럼 멀리 나가. 내가 돌아오길 원하지 않으면. 내가 그러지 못하게 하면 돼. 결코 아무도 모를 거야. 해변에서 벌어지는 그저 그런 일이야. 내일 아침에 우리 가"

 

다음 날, 그들은 시청에서 결혼식을 올렸고 해변에 갔습니다. 프랭크는 아주 멀리 나갔다가 자신이 그녀를 사랑한다는 걸 비로소 알았지만 임신한 몸이었던 코라는 긴장했던지 물속에서 움직이지 못하는 상황이 발생합니다. 

 

프랭크는 그녀를 품에 앉고 파도를 가로질러 돌진했고, 뭍에 내려서도 그녀를 안고 차에까지 안고 가 차에 태운 후, 병원으로 전력질주 하기 시작합니다.

 

프랭크는 급한 마음에 대형트럭을 추월하려다 사고를 냈고 코라는 죽었습니다. 이 소설의 마지막 장은 카뮈의 소설 <이방인>의 뫼르소처럼 사형수 감방에서 글을 쓰고 있는 것으로 끝납니다. 프랭크가 쓴 마지막 글들을 읽고 있노라면 많이 슬퍼집니다. 

 

에필로그

작가 제임스 M. 케인은 1927년 미국을 떠들썩하게 했던 실제 사건에서 모티를 얻었다고 했습니다. 타블로이드 신문에 기사화됐던 이 사건을 케인은 하드보일드 문체로 이 소설을 썼고, <포스트맨은 벨을 두 번 울린다>은 누아르 소설이라는 장르를 열었습니다.

 

작품해설 중에서

작가 제임스 M. 케인은 영화 <이중 배상>(1944)의 원작 소설인 <배액 보상>도 썼고, 그 소설은 빌리 와이더 감독이 동명 영화로 제작하였습니다. 프레드 맥머레이와 바버라 스탠윅이 열연한 영화는 초창기 필름 느와르의 고전이 되었습니다.

 

영화 <이중 배상>의 바바 스탠윅이 연기해 낸 팜므파탈은 <보디 히트>(1981)에서 캐서린 터너가 관능적으로 연기하며 그 계보를 이어받았습니다. 그리고 샤론 스톤이 <원초적 본능>(1992)에서 다시 한번 캐서린 트러멜이라는 팜므파탈로 정점을 찍었습니다.

 

이러한 흐름에서 본다면 <포스트맨은 벨을 두 번 울린다>의 코라는 그간 탄생한 팜므파탈의 어머니라고 불러도 좋을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