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픽 노블

요시타케 신스케 그림 에세이, 나도 모르게 생각한 생각들

책 읽는 밤 2021. 2. 25.

요시타케 신스케의 <나도 모르게 생각한 생각들>(2020)은 저자가 일상 속에서 그냥 무심코 떠오른 생각들을 알뜰히 모은 그림 에세이집입니다. 저자는 스케줄 노트를 늘 가지고 다니며 거기에 있었던 일, 없었던 일을 그려두는 습관이 있다고 해요. 그걸 묶은 게 이 그림 에세이집입니다.

 

요시타케의 신스케의 글감을 보면 죄다 즉흥적이고 종잡을 수 없는 내용들이에요. 마트에서 '자유롭게 사용하세요'라는 안내문이 붙은 상사를 보고 우리 인생도 신으로부터 그 몸을 자유롭게 쓰거라, 라는 말씀을 듣고 이 세상에 태아난 게 아닐까 하는 생각. 

 

이마에 척 붙이면 기름종이처럼 걱정거리를 흡수하는 종이를 누가 만들어주었으면 좋겠다는 생각, 아침 7시에 일어났는데 시계에 양말이 붙어 있는 것처럼 보였다는 이야기, 라면집에서 사탕을 받은 아이의 행복한 얼굴을 보고 세상에 믿을 수 있는 게 있다면 분명 그런 것일 거라는 생각들.

 

그런데 요시타케 신스케의 이 사소하고도 별것 아닌 생각들에 마음이 닿으면 갑자기 위로받고 있다는 느낌이 드는 것은 왜일까요?

 

요시타케 신스케는 너무 별것 아니라서 말하지 않는 것, 너무나 소중해서 말하지 못하는 것, 그런데 말을 붙여보고 싶다고 말합니다. 너무 별일 아니라서 굳이 말하지 않는 것과 너무나 소중해서 말하지 못하는 일이 세상에는 가득하다는 것이지요.

 

요시타케 신스케는 그런 양쪽의 일들에 하나하나 정중히 말을 붙여 나가는 작업이 즐겁고, 이 그림책에서도 그러한 작업들을 보여주고 싶었다고 해요.

 

소비되고 주고받는 말 이외에도 언어화되지 않은 것이 있다는 것. 언어화할 가치가 없다고 치부되는 것과 두려워서 언어화하지 못하는 것, 거기에 조심스레 조금씩 말을 붙여 나가는 작업을 하는 사람들이 작가들이란 것이에요. 그게 또 이 그림책이고요.

 

"당신 덕분에, 저는 마침내 당신을 필요로 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그동안 참 고마웠습니다"

 

중학교 시절, 저자에게 굉장히 큰 영향을 준 작품이 있었는데 그걸 오래 만에 다시 읽고는 '아, 이제 필요 없어'라는 생각이 들어 중얼거린 말이라고 해요. 그 작품으로부터 엄청난 영향을 받았지만 이제는 그 영향을 흡수하고 성장하였으니 필요가 없어진 것이라는 이야기예요.

 

부모님에게 저 말을 할 수도 있겠고 헤어지는 남자 친구나 여자 친구에게도 할 수 있겠지요. 헤어짐의 시기는 누구에게나 있는 법이니까요. 그걸 자각했을 때 마지막에 남는 건 역시 감사의 마음뿐이라는 것입니다.

 

이처첨 <나도 모르게 생각한 생각들>에는 우울하거나 사소하게 넘어가는 일상에서 뻑뻑함을 걸러내고 담백한 균형을 찾게 해주는 생각 포인트들이 많아요. 저자의 말처럼 사소한 일에 의기소침 해지만, 사소한 일에 위로받는 지혜라고 할까요?

요시타케 신스케는 스케치를 하면 마음이 점점 평온해진다고 합니다. 그에게 그림은 정신건강상 필요한 재활 훈련 같은 거라고 합니다. 저자처럼 우리들도 자포자기하는 일상 속에서도 치열하게 즐겁고 재미난 생각을 계속해야겠다는 다짐이 생깁니다.

 

마지막으로 저자는 재미있다고 생각한 것을 어떤 형태로든 기록하여 남긴다는 건 여러 모르 편리하므로 독자들에게 추천해요. 어떤 형식으로든 기록을 시작하면 자신의 방법 외에도 재미있는 것이 세상에 많다는 게 보이기 시작한다는 거예요.

 

저자의 추천에 따라 읽으며 위로를 느꼈던 <나도 모르게 생각한 생각들>의 기억을 이렇게 기록으로 남깁니다. 그러면 남에게, 자신에게, 세상이 조금은 따뜻해질 수도 있다고 하니까요.

 

요시타케 신스케는 일러스트로 활동하다 그림책으로 전향한 작가예요. 그의 그림책들은 아이들로부터 많은 사랑을 받고 있는 작품들이 많아요. 대표작으로 <이게 정말 사과일까?>, <벗지 말걸 그랬어> 등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