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리 SF판타지

김중혁의 '당신의 그림자는 월요일' 한국 추리 소설 추천

책 읽는 밤 2020. 3. 23.

주말 동안 김중혁의 <당신의 그림자는 월요일>이라는 장편 소설을 읽은 것은 행운이었다. 그러지 않았다면 아마 주말 동안 무기력해 죽었을 것이다. 우울하고 외로울 때, 아무것도 할 수 없을 때, 심해 바닥에 가라앉은 것 같은 기분이 들 때에는 근사한 탐정이 등장하는 추리 소설을 한 편이라도 읽어야 그나마 겨우 숨을 쉴 수 있다.

<당신의 그림자는 월요일>의 주인공은 탐정 구동치다. 이 정감 가는 이름을 가진 사내는 전직 형사 출신으로 하는 일이 남들의 과거 기록을 지워주는 딜리팅(deleting)이다. 그것도 의뢰인이 죽고 나면 5일 이내에 의뢰한 기록물을 깨끗하게 지워준다. 하드디스크든 사진이든 종이조각이든 뭐든 의뢰인이 의뢰한 물품이라면 뭐든지.

몇몇 설정을 제외하면, 줄거리도 좋고 등장인물들도 좋다. 탐정 사무실이 있는 악어 빌딩도 읽다 보면 금세 친숙해진다. 대사들도 찰지게 친다. 사건 전개도 빠르고 문장도 괜찮다. 그러니 흡인력이 꽤 있다. 

탐정 구동치는 한 의뢰인이 사고사 한 뒤 그가 의뢰한 태블릿 피씨를 찾지만 행방이 묘연해져 딜리팅 하지 못한다. 그 태블릿 피씨가 이 소설의 스모킹 건인 셈이다.

그 태블릿 피씨에는 국정농단이 들어가 있는 것이 아니라 어느 사장이 숨기고 싶어 하는 동영상이 들어가 있다. 태블릿 피씨를 둘러싼 탐정 구동치와 사장 사이의 싸움이 이 소설을 끌고가는 원동력이라 하겠다.

세상에 밝혀지면 절대 안되는 동영상들을 구태여 기록하고 저장하고 그것을 갖고 다니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도 죽을 때까지 말이다. 일반인들은 말할 것도 없고 정치인이나 연예인들이 그런 동영상을 갖고 있다가 세상에 드러나면서  패가망신하는 경우를 종종 보아오지 않았던가.

탐정 구동치는 타인의 비밀을 지워주는 소위 딜리팅이라는 일을 하면서 점점 회의에 빠져 든다. 과거가 미래를 발목잡는다면, 그 과거가 어떤 의미가 있을까 말이다. 과거는 그저 과거로 있을 때 아름다운 게 아닐까? 

<당신의 그림자는 월요일>을 읽으면서 내가 만약 탐정 구동치에게 의뢰한다면 무엇을 딜리팅 해달라고 할까 생각해 보았다. 어쩌면 이 블로그가 될지도 모르겠단 생각이 들었다. 내가 죽고나면 이 블로그를 관리할 사람이 없을 것이므로. 또 이 블로그가 내 사후에는 먼지만큼의 의미도 없을 것이므로. 그것을 생각하면 슬프다.

참, 탐정 구동치의 사업 아이템은 수익성이 별로 없을 것이다. 딜리팅은 사후에나 하는 것이므로 의뢰인들은 모두 죽음을 앞둔 노인들일 것이다. 종신보험과 개념이 비슷한 셈이다. 그런데 소설 속 의뢰인들은 하나같이 젊은 사람들이다. 그러니 등장인물들은 모두 일찍 죽는다.